[보고서]2024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보고서 살펴보기 (3)

지난 7월 16일 발표했던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보고서>를 간추려서 네 편에 걸쳐 공유드립니다.

 요약 3. 우리에게 사육곰은 무엇이 되고 있나? - 농장주 면담 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사육곰들의 삶의 질은 여전히 매우 낮습니다. 흔히 곰 농장주를 잔인한 가해자의 모습으로 그리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곰 사육 실태 조사를 위해 만난 곰 농장주들은 기형적 산업의 오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사육곰의 처우나 산업 전반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사육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의 상상을 벗어나 농장주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면담에서 만난 대부분의 농장주는 예상외로 곰에 대해 따뜻하고 온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곰을 기르기 시작한 이유와 관련하여 본인이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았고, 곰을 가까이 두고 보는 그 자체가 좋고 즐겁다는 답변도 많았습니다. 곰들도 농장주가 가까이 가면 반기고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즉, 전반적으로 곰을 굉장히 가깝고 친근한 관계의 상대방으로 느끼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키울 거예요. 곰 보면 항상 즐거워요. 자식 같아서 웬만하면 (도살도) 안 합니다. (…) 자식보다 예쁘고 손주보단 못하고. (…)  곰을 제일 마지막에 보내고 싶어요. 하루라도 곰이랑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요. - 농장주 A

저를 반가워하고, 어떤 교감이 있어요. - 농장주 E


물론 일부 농장주들은 여전히 웅담의 효능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마저도 곰을 그저 웅담을 채취하기 위한 수단처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곰이 덜 고통받는 방식으로 채취하자거나 곰에게 그만큼의 대우를 해주자는 등 마치 곰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듯한 답변을 내놓는다는 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더러는 웅담 채취를 위해 곰을 도살할 때에 느끼는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곰들의 낮은 삶의 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족하지만 곰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웅담이 좋은 약인데, (…) 연구해서 아픈 인간을 살릴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연구해서 장려해야 합니다. 무조건 금지가 아니고, 좋은 마취제를 써서 웅담을 뽑을 수 있게 해야죠. - 농장주 E

보기가 안됐지. 살생하려면 눈물나. 자식 같아요, 사람 죽이는 것 같아요. 곰 한 마리 도살하고 나면 며칠 동안 속상해서 밥도 못 먹어. - 농장주 H


대부분의 농장주들은 스스로가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 사육곰을 기른다고 자부하였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는 휴일이 있기 어렵고, 농장주들 역시 곰들에게 매일 먹이를 주고 주기적으로 곰사를 청소하는 일상을 수십 년 간 지내왔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것이 그저 기계처럼 단순히 반복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사이 긴 시간 곰을 관찰하고 함께 부대끼며 곰을 알아가는 경험이라는 것도 중요한 지점입니다. 가령 먹이를 급여하는 일만 해도, 직접 곰들에게 이것저것 먹여본 후 곰이 무엇을 잘 먹고 무엇을 먹을 때에 건강한지 오랜 기간 살펴본 경험의 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곰 키우고 나서 곰 밥 때문에 따로 길게 여행 다닌 적도 없어요. - 농장주 D

나보다 더 잘 기르면 (보호시설에) 주는데, 한 놈도 없어. - 농장주 E

우리는 곰을 괴롭히면서 키우는 게 아니에요. 겨울에도 아침저녁으로 청소해요.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 농장주 H


안타까운 것은 그 경험의 축적이 정답인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성실한 사육 방식에 대한 자부심은, 결국은 곰에 대한 몰이해와 엮여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보였습니다.

실제 사육곰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음에도, 농장주들은 곰들이 충분히 좋은 환경에서 큰 스트레스 없이 산다고들 믿었습니다. 야생동물인 곰을 농장동물처럼 가두어 기르는 과정에서 농장주들이 겪는 각종 사고 역시 너무나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형행동에 대해) 밥 주기 전에 철창을 붙들고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이렇게 하긴 해요. 아마 애교 부리는 건 가 봐? - 농장주 B

얘네는 어릴 때부터 손을 탔기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지.  곰들에게 천국이지, 뭐. - 농장주 H


농장주들의 평균 연령은 이제 70세를 넘어갔기 때문에 곰을 돌보는 일이 신체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부 장려 산업이었던 곰 사육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되어버렸고, 그사이 엉거주춤하게 이어져온 정책들 사이에서 농장주들은 사육곰과 함께 외면되고 또 방치되었습니다.

웅담 수요가 줄면서 그동안 들어간 돈이나 노력을 회수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농장주들은 곰을 계속 기를 수도, 또 기르지 않을 수도 없는 모순 속에 놓여버렸습니다.

남편은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에요. (…) 저희 둘 다 나이가 많으니까, 빨리 정리하고 싶죠. - 농장주 B

자식들은 그만하라고 하죠. 저도 이제 그만하고 놀고 싶어요. - 농장주 J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인 조건이나 제도적인 상황과 별개로, 농장주들은 그동안 수십 년 간 동고동락해 온 곰들이 이제는 지금의 사육시설을 떠나 보호시설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심정적으로 기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래 곁에 두고 길러 온 곰을 보내는 것은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곰이 좋은 생활을 할 테니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에는 곰 보호시설이 이곳 농장보다는 더 나은 환경일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반반이죠. 서운하기도 하고, 곰들이 잘 사는 모습도 좋고. - 농장주 A

여기보다 낫겠지. 먹을 것도 많고. - 농장주 K

하루라도 빨리 갔으면 좋겠죠. 좋은 데 가서 보호받고 살아야죠. - 농장주 I


곰들이 보호시설에 가기 전 웅담 구매자가 나타나는 경우에도 웅담을 판매하지는 않을 것이라 답변한 농장주가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그 이유로는 이미 웅담 판매를 멈춘 지 오래되었다거나 더 이상은 곰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같은 가격이라면 웅담을 판매하기보다는 보호시설로 보내겠다고 답한 농장주도 있었습니다.

가격 협상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 잡아먹을 것이라 협박성으로 말하는 농가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농장주들 역시 면담 과정에서 곰이 보호시설의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은근히 내비쳤습니다.

가격 비슷하면 굳이 팔 생각 없어요. 두 배로 준다면 몰라도. - 농장주 M

지금 웅담도 안 팔고 있어요. 이제는 곰을 죽이기도 싫고. - 농장주 N

이제 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포기했어. 가격 안 맞으면 그냥 다 잡아먹을 거야. (…) 물론 보호시설에 가면 좋겠지. 나보다는 잘하겠지. - 농장주 D


폭력적인 가해자로 그려지는 일반적인 상상과는 달리, 농장주들은 매일같이 만나는 사육곰과 일종의 정서적 연결을 경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곰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하기보다는 곰이 보호시설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가기 바라는 이들의 마음에서, 그 정서적 관계가 단순한 경제적 조건을 넘어서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사육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농장주라는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기형적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농가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과 더불어 곰이 보호시설로 이주되기 위한 제반 조건이 빠르게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사육곰에 대한 시민 인식 조사 결과를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