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일반]얼룩말 '세로'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지난 3월 23일 오후에 얼룩말'세로'는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시내에서 방황하다 3시간여만에 잡혀 돌아왔습니다. 이번 탈출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도 넘쳐났습니다. 세로는 정말 부모를 잃고 반항하기 위해 동물원을 탈출하였을까요? 단순히 재미있는 사건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동물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이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얼룩말 ‘세로’는 어쩌다 탈출 했을까?

동물원이라는 공간은 야생동물을 가두어 기르면서 전시하는 곳입니다. 가둔다는 의미는 가두는 경계가 무너졌을 때 언제라도 동물이 경계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확한 동기나 인과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세로를 가두고 있는 울타리라는 경계가 부서졌기 때문에 탈출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동물이 부수고 나올 수 있는 울타리로 방사장 경계를 조성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인간에게 보다 위협이 되는 동물이었다면 더 무겁게 다루어졌을 것입니다. 별다른 피해 없이 ‘세로’가 무사히 돌아왔지만, 인간과 동물 모두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세로의 사연에 묻혀 제대로 짚어지지 않고 있지만, 동물원 측의 부실한 안전관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각종 언론과 SNS는 세로의 탈출 이유가 부모를 잃고 반항을 해서 탈출했다며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동물에게 “반항했다” “삐졌다” 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의인화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동물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과소평가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됩니다. 동물이 일상적인 행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삐졌다고 말하면, 동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제대로 원인 파악을 하지 못한 채, 삐진 주체를 탓하게 됩니다.


비판적 의인화는 인간이 동물과 공감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하지만 만화 속 동물 주인공처럼 왜곡된 의인화는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특히 동물에게는 심각한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Q. ‘세로’의 짝을 데려오는 것이 좋은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까?

얼룩말은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맺을 대상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로가 일상적으로 외로움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탈출의 직접적 원인은 아닙니다. 그래서 짝을 데려오는 것은 탈출의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동물원 안에서 복지를 높이기 위해 무리를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초원얼룩말의 정상적인 사회적 구성은 부부 한 쌍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얼룩말 무리에서는 지속적으로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암수가 같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수컷끼리 무리를 짓기도 합니다. 인간이 데려온 암컷이 세로와 잘 지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는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마리 얼룩말을 각각 어떻게 돌볼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동물원에서 왜 얼룩말이라는 종을 보유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동물원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보전, 교육, 연구라고 주장하는데, 얼룩말 보전이나 연구가 한국의 동물원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역할이 교육이라면, 얼룩말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교육적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얼룩말은 초원을 달리고 풀을 뜯고 가족을 만들고 포식자를 경계하는 등의 복잡한 삶을 갖는 동물입니다. 마른 흙바닥과 좁은 공간에 울타리를 친 곳에서의 얼룩말 전시는 얼룩말에 대한 인식을 납작하게 만드는, 오히려 반교육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룩말이 더 나은 조건에서 살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새로운 암컷을 데려오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야생동물종의 보유와 전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Q. 얼룩말인 ‘세로’를 야생으로 보내면 안될까?

얼룩말이 야생동물이니 야생에 풀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동물원처럼 사육 상태에서 태어난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채로 성장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 가서도 야생에서의 방식으로 무리를 이룰 줄 모르거나, 인간과 포식자를 경계하지 못해 고통스럽게 죽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기르던 야생동물을 야생에 대책 없이 풀어주는 것은 책임감 없는 동물 유기에 가깝습니다.



'세로' 탈출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

동물원의 역할이 사회적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대중의 눈요기를 위해 동물을 가두어놓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보전, 연구의 역할도  야생동물을 집단으로 수용하기에 얼마나 정당성을 갖는지 진지하고 솔직하게 생각해볼 때입니다. 충분히 정당하지 않다면 장기적으로 동물원을 어떻게 없앨지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동물원을 당장 없앨 수 없다면 이미 갇혀있는 동물들의 복지에 기준하여 동물원에 꼭 남아있어야 할 동물을 선정하고 종과 개체수를 줄일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