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곰 산업 종식 ]농장주와의 특별한 동거


지난 일요일, 오전 일과를 마친 활동가들이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누군가 사무실 컨테이너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어보니 농장주 어머님께서 우산을 들고 서 계셨습니다. 마당의 파라솔을 펼치려 하는데, 아버님의 힘만으로는 도통 펴지지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어머님을 따라가 간단히 파라솔을 펴드리고, 이어 어머님이 준비해두신 열무국수와 감자전까지 맛있게 얻어먹었습니다.

화천에서는 사육곰 농장주와 사육곰 구조 돌봄 활동가들의 기묘한 동거가 2년째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사연인 즉슨 우리가 곰 보호시설을 만들 부지를 찾고 있던 2021년, 화천의 한 남성 농장주가 심혈관계 질환으로 병석에 눕게 되면서 혼자 곰들을 사육하기가 힘에 부친 여성 농장주가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더 이상 곰들을 기르지 못하겠다며 곰들을 잘 돌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연락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고민 끝에 우리는 그 농장의 곰들을 인수해서 그 자리에서 돌보기 시작했고, 지금 곰들이 지내는 보호시설 옆에는 수십년간 이 곰들을 사육해 온 농장주 일가가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사육곰 농장주와 곰보금 활동가들의 동거는 그러나 생각보다 굉장히 화기애애 합니다. 다행히 많이 회복된 아버님께서는, 하루에 여성 활동가 2명만이 근무하는 화천 현장에서 힘이 필요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배수로를 누르는 커다란 바위를 옮겨야 할 때나 트럭 바퀴가 진흙에 빠져 꿈쩍도 하지 않을 때에도 모두 우리는 아버님께 SOS를 치곤 합니다. 아버님이 들려주시는 당신의 경험에서 우리가 돌봄의 힌트를 얻는 일도 많고요. 부득이하게 일손이 부족한 날에는 활동가들을 대신하여 곰들의 밥을 챙겨 주시는 것도 아버님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주로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하는 활동가들을 자주 댁으로 불러 집밥을 차려 주시곤 합니다. 특히 일요일에 먹은 어머님의 열무국수는 한 활동가의 최애 메뉴고요. 점심을 먹고 나면 두 분이 기르시는 개들을 산책시키는 것도 활동가들의 커다란 즐거움입니다. 왠지 적대적이어야 할 것만 같은 우리가 이렇게 화목한 동거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농장주 부부가 우리 활동의 취지와 본질을 점차 이해하고 인정해주신 덕분이었습니다.

‘곰 농장주’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 나시나요? 사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곰 농장주들을 만나다 보면, 흔히들 상상할 그런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을 1980년대에 사육곰 산업을 장려하는 정부 기조에 따라 곰을 사들인 사람들은, 세상의 인식이 달라지며 가해자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수십 년 동안 길러온 곰을 차마 죽일 수 없다며 여전히 매일같이 살뜰히 밥을 챙기고 자기 나름으로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또 무엇보다 이들은 입을 모아 자신이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두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들을 탓하고 싶어지기 보다는, 동물에 대한 사랑의 방식이 우리와 달라지게 됐던 그들의 삶의 맥락이 차라리 안타깝게 느껴지곤 합니다. 우리가 무작정 농장주들을 비난하고 사육곰들을 압류하거나 무조건 싼 값에 데려오려 하기보다, 이 해결의 과정에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를 꾸준히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느 때처럼 오늘도 우리는 농장주 아버님 어머님께 인사를 드린 후 출근하고 또 퇴근을 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훨씬 더 넓은 땅에서 커다란 생츄어리를 만드는 것이라 언젠가는 두 분과 이별을 하게 되겠지마는 그때까지 저희의 특별한 동거를 따뜻하게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