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기승이라지만 하늘은 푸르고 옷차림은 가벼워지고 나무들 사이에선 초록이 눈에 띕니다. 아무래도 봄인 것 같습니다. 봄을 알리는건 비단 옷차림이나 나무만이 아닙니다. 화천의 곰들도 기가 막히게 봄을 알아차리고 슬금슬금 내실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더니 사육장 바닥에 드러누워 햇볕을 맞으며 낮잠을 자고 기다렸다는 듯 부지런히 먹이를 먹습니다.

곰들이 모두 잠에 든 1월부터 잠에서 깬 3월까지. 3개월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저희의 겨울에는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돌봄을 거를 수 없기에 다 같이 모여 여윳시간을 가지기 힘들었던 상근활동가들은 일상에서 벗어나 함께 모여 제주도로 워크숍을 떠나기도 하고 화천 숙소가 아닌 새로운 회의 장소를 물색해보는 사치도 부려봤습니다. 각자 미루어 두었던 개인시간을 가지느라 바쁜 겨울이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운동을 시작하고, 함께 사는 동물과 느긋한 낮잠 시간도 가져보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여가생활도 제법 즐겼습니다. 어른에게도 겨울방학이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면서요.

하지만 돌봄에 어찌 방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제주, 서울, 춘천.. 몸이 어디에 있든 돌봄활동가들은 틈틈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CCTV 속 곰들의 안위를 확인했습니다. 칠롱이는 오늘 몇 시쯤 내실에서 나왔는지, 덕이는 며칠째 내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지, 라미는 물탱크 안 볏짚을 왕창 꺼낸 다음 다시 물탱크로 가지고 들어가 탱이를 정비한다거나, 알코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육장 우물에서 잠을 잔다든가 하는 모습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다른 계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몸은 여유롭지만 눈과 손은 바쁜 채로 돌봄을 이어나갔습니다. 이따금 화천 시설에 들러 살금살금 곰들의 겨울잠을 둘러보거나 낡고 오래된 시설이 눈과 추위에 상한 곳은 없는지 점검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고요.

곰들의 리듬에 맞게 활동가들의 몸도 바빠질 때가 왔습니다. 잠들어있는 동안 몸 상한 곳은 없는지 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는 새에 살은 얼마나 빠졌을지 몸무게를 재보고, 그에 맞는 식단도 고민해봐야 할 때입니다. 곰을 들여다보는 일 뿐 아니라 제 2 곰숲 공사를 따라다니며 새로운 공간을 짓는 일과 곰들을 더 잘 살게 할 수 있는 행사들을 기획하며 돌아다니는 일도 우리를 바쁘게 할 것입니다. 한껏 느긋하고 여유로웠던 겨울이 벌써부터 그리워지지만 생동하는 봄과 함께 바삐 움직일 생각을 하면 올해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떨리는 마음입니다. 곰도 인간도 겨우내 한껏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쭈욱 기지개 켜고 겨울을 마무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