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츄어리 건립]브라우징(browsing)


겨우내 단단하게 굳었던 나뭇가지에 봄이 오면 연초록빛 어린 잎이 일제히 움틉니다. 반달가슴곰이 사는 숲에서는 이 여린 싹들이 수많은 숲 속 생명을 먹여 살립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에게도 나뭇잎은 중요한 먹이원입니다. 지리산에서의 반달가슴곰 연구에서는 참나무, 단풍나무, 찔레, 진달래의 잎을 비롯해 고사리, 조릿대, 취나물 같은 봄의 전령들이 주요한 먹이로 나타났습니다. 육식동물이었던 곰은 잡식동물로 살아가기 위해 나뭇잎을 좋아하는 동물로 진화했습니다.


나뭇잎을 먹는 야생곰의 일상을 잠깐 들여다볼까요? 곰들은 높은 나무에 올라 나뭇가지를 꺾고 거기에 붙은 여린 잎을 사탕 빼먹듯이 발라먹습니다. 그리고 움켜쥔 나뭇가지는 엉덩이 아래에 꽂습니다. 그렇게 엉덩이 아래에 쌓인 나뭇가지는 곰이 편안하게 누워 쉴 둥지가 됩니다. 곰이 나무 위에 튼 이 둥지를 ‘상사리’ 혹은 ‘곰탱이’라고 부릅니다. 밥도 먹고 침대도 만들고, 곰의 일상은 낭비되는 행동 하나 없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가두어 기르는 곰에게 일상을 채울 만큼 나뭇잎을 충분히 주기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자그마한 나뭇잎을 하나씩 뜯어먹으면서 일상을 채우려면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나뭇가지를 잘라다 줘야 합니다. 그래야 몇 시간 정도는 야생곰처럼 나뭇잎을 뜯어먹기도 하고 뱉기도 하며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저희는 농장 주변의 나무 중에 곰들이 좋아하는 참나무나 단풍나무를 기어올라 잎이 충분히 붙어있되, 너무 굵어서 옮기지 못할 정도는 아닌 가지를 톱으로 슥삭슥삭 베어옵니다. 곰이 열 네 마리니 곰 한 마리 당 나뭇가지 두 개만 주더라도 스물 여덟 개를 베어와야 합니다. 


이렇게 나뭇가지를 베어다 동물에게 주는 일을 브라우징(browsing)이라고 합니다. 염소 같은 초식동물이 나뭇가지에서 잎을 뜯어먹는 일을 영어로 browse라고 표현하는데요. 동물을 기르는 곳에서 인공적인 사료나 농산물 외에 싱싱한 나뭇가지를 잘라다 주는 일은 동물의 복지에 중요합니다. 원래 나뭇잎을 먹고 사는 동물들에게 나뭇잎을 먹는 기회는 큰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매일 나무를 자르다보면 손가락을 베거나 찧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뭇가지를 한가득 들고 언덕길을 오르는 것도 숨이 찹니다. 청소도 해야 하고, 밥도 챙겨야 하고, 하나하나 훈련을 하고, 그 와중에 영상을 찍고, 일과가 끝나면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곰이 브라우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에 톱자루를 쥐고 숲을 헤집는 일은 우리에게도 가슴이 찌르르할 정도로 신나는 일입니다. 곰을 돌보는 일상은 그렇게 땀범벅이 되면서 곰들을 기쁘게 하는 일들로 가득 찹니다.



#나뭇잎 #브라우징 #동물복지 #사육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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