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향상 활동] 곰 피를 뽑아라


화천 곰들은 일 년에 두 번 혈액검사를 받습니다. 인간인 우리도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국가건강검진 정도에서 혈액검사를 받는데 곰은 일 년에 두 번? 약간 과한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극한 상황에서 평생 살아온 사육곰 출신들에게는 대단히 밭은 주기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곰이 아프다는 신호를 인간이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곰의 몸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로 혈액검사 수치를 애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픈 것’과 ‘혈액 수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겠지만요

보통 혈액검사라고 하면, ‘정상치’라고 하는 범위 안에 각종 검사항목 결과에 들어맞는지를 확인하는데요. 사람이나 개, 고양이는 검사 결과가 무척 많이 쌓였기 때문에 그 정상치가 꽤 명확하게 확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혈액검사를 받는 곰 자체가 많지 않아서 과연 어느 정도의 수치가 ‘정상’인지 불분명합니다. 지리산에 방사 중인 야생 반달가슴곰에서의 수치나 그나마 비슷한 미국의 아메리카흑곰에서 검사한 결과를 참고 삼는 정도입니다. 저희는 가두어 길러지는 곰에게서 어떤 혈액 검사 수치가 ‘정상치’를 이루는지 자료를 모을 겸해서 열심히 피를 뽑아 검사합니다.

여러 차례 보여드렸듯이 화천 곰들은 채혈을 위해 마취하지 않습니다. 개나 고양이처럼 ‘꽉 잡고’ 채혈할 수 없는 힘 센 곰들은 건강검진을 위해 마취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수의사가 마취주사를 블로건으로 날려 곰의 몸에 꽂을 때 곰은 심각한 통증과 고통을 느낍니다. 가두어져 있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고 블로건을 쏘는 수의사와 싸울 수도 없는 상태에서 날아오는 마취주사는 사육곰의 일생에서 가장 나쁜 경험일 수 있습니다. 복지 수준이 순간적으로 뚝 떨어져버리는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피치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블로건을 쏘지 않습니다.

대신 철창 사이로 곰이 앞발을 내밀도록 훈련해서 ‘발등이 좀 따가운 놀이’ 정도로 인식하게 합니다. 지금보다 시설이 더 정비된다면 앞 발등보다 채혈이 더 쉽고 곰도 편안하게 느끼는 부위에서 시도해보겠으나,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채혈이 인간의 손등에 해당하는 부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늘로 찌르니 통증이 없을 수 없지만, 그걸 이기는 게 ‘꿀물’입니다. 꿀물이 약하다 싶으면 사과도 동원됩니다. 평소에 먹을 수 없는 달다구리는 인간이 털을 밀고 알코올 솜으로 차갑게 닦고 바늘로 찔러대도 곰을 꾹 참게 만듭니다.

올 가을 검사에서도 모든 곰들이 정상 수치의 피를 내주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피를 분석한 결과로 숫자를 나열해놓고 위안과 고민을 얻는 별종입니다. 곰을 척 보고 몸과 기분 상태를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서로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일은 제법 복잡해야 하는 일입니다. 피를 내어주는 곰들도 우리를 그렇게 번거로운 존재로 볼 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