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곰 중 가장 센 곰은 어떤 곰인가요?
A: 사실 야생동물끼리의 상호작용 결과를 두고 ‘누가 가장 세다’, ‘누가 누굴 이긴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세다’, ‘이겼다’의 기준이 가변적이고 모호하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애초 야생동물의 삶에서 ‘공격적인 상호작용’, 즉 ‘싸움’은 워낙 드물게 일어나는 일인지라 포착하는 것이 쉽지 않고,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번 질문처럼 서식지가 서로 달라 아예 만날 수조차 없는 종들을 포함하여 우열을 가리는 경우에는 판단의 근거로 삼을 정보 자체가 없어 문제가 더욱 복잡합니다. 이를 가정적 상황 아래 몇가지 알려진 정보들을 토대로 해결하려는 매체들도 더러 있지만, 이러한 분석들은 대개 생태적 맥락이 없는데다 판단을 위해 너무나 많은 가정과 변수를 감수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인위적 상황에 놓인 포획·사육 개체들 사이에서 일어난 ‘싸움’들을 근거로 드는 경우들도 있습니다만, 이러한 정보들은 반생태적·비과학적임은 물론 대부분 동물복지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맥락에서 얻어지는 것들인지라 갇힌 야생동물들의 복지를 추구하는 저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배치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번 질문에 대해 ‘이 곰이 저 곰보다 세다’는 식의 명료한 답변을 드릴 수 없음에 유감스럽습니다. 대신 이번 달 <궁곰하네>에서는 그 해답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 보실 수 있도록, 서식지가 겹치는 서로 다른 종의 곰들이 생태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연구결과들을 소개해 드리는 것으로 갈무리를 해보려 합니다.
오늘날 서로 다른 종의 곰들이 서식지를 공유하는 사례는 모두 5가지의 조합으로 존재하는데요, 이 중 3가지는 아시아, 2가지는 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납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서식지 중첩은 아시아 곰 중 위도 상 위아래로 가장 넓은 분포를 보이는, 우리에겐 반달가슴곰으로 익숙한 아시아흑곰(Ursus thibetanus)이 3종의 다른 곰과 각각 서식지를 공유하는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중 중첩이 가장 좁은 범위에 걸쳐 나타나는 종은 대왕판다(Ailuropoda melanoleuca)입니다. 두 종 모두 식물성 먹이가 주식인데다 주행성이기까지 해 혹여 경쟁이 있지는 않을까 싶은데요, 판다가 서식지 내의 다른 동물들과 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1)에서는 두 곰의 서식지 선택에서 서로의 존재가 기피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원리에 대해서는 두 종의 공존에 대한 다른 연구2) 를 통해 더 자세한 짐작이 가능한데요, 우선 흑곰과 달리 판다는 1~2종의 대나무만을 먹는데다 가을철엔 판다가 흑곰보다 더 고고도에서 생활하는 경향이 있고, 흑곰은 야간에 잠을 자지만 판다는 밤에도 간헐적으로나마 먹이를 먹으며, 흑곰과 달리 판다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 등의 차이가 있어 두 곰이 경쟁하지 않고도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열대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가장 작은 곰인 말레이곰(Helarctos malayanus)과 아시아흑곰의 경우도 다소 비슷한데요, 두 종의 식이생태와 공존에 대한 연구3) 를 보면 두 종 모두 과일을 가장 많이 먹고 그 다음으로는 곤충류를 먹는 식성을 가진 점은 같지만 보다 긴 혀와 발톱, 더 작은 체구를 가진 말레이곰이 비율상 곤충류를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경쟁 압력이 줄어들며, 이것이 먹이가 연중 풍부한 열대우림의 조건과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 두 곰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위 경우들은 비록 어떤 곰이 더 센지는 알려주진 못하지만 세 종이 최소한 생태적으로는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데요, 반면 불곰(U. arctos)을 포함하는 상호작용들은 그 양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불곰은 아시아 서식범위의 남쪽 일부에서 아시아흑곰과 서식지가 겹치는데요, 이 지역들 중 포식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는 극동러시아에서는 불곰이 겨울잠을 자는 아시아흑곰을 잡아먹으려 시도한 사례4) 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소수의 현장 관찰에 두 종이 크기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이나 불곰이 다른 중대형 동물을 섭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 등의 일반적인 사실들을 더해 보통은 불곰이 아시아흑곰에게 보다 상위의 경쟁자이자 포식자라고 보는 것이 중론이죠.
두 곰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시아흑곰의 북미 대응종인 아메리카흑곰(U. americanus)과 불곰의 관계를 보면 조금 더 자세한 짐작이 가능합니다. 두 종은 지금까지 소개한 어떤 조합보다도 넓은 범위에 걸친 서식지 중첩을 나타내는지라 그 만큼 많은 관찰과 연구가 이루어져 왔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불곰은 아메리카흑곰에게도 상위의 경쟁자이자 포식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흑곰과의 자료가 제한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메리카흑곰과 불곰은 물리적으로 충돌한 사례가 옐로우스톤국립공원 등지에서 여러 차례 보고되어 있으며, 불곰에게 아메리카흑곰이 잡아먹힌 사례도 한 건 이상 확인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두 종이 그렇게 많은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이유는 두 곰의 세부적인 생활사가 다르기 때문인데요, 와이오밍 북서부에서의 연구5) 에 따르면 우선 흑곰은 저고도의 삼림환경을 선호하는데 반하여 불곰은 보다 고고도의 개활지를 선호하는 등 공간적인 선호도가 다르고, 불곰이 주로 저녁부터 새벽 시간에 활동한다면 흑곰은 주로 낮 시간에 활동하는 식입니다. 더하여 흑곰이 흔적이나 냄새를 통해 불곰을 먼저 피해 다니는 경향이 있고, 직접 마주치는 경우에는 보다 가볍고 나무를 잘 타는 특징을 살려 나무 위로 몸을 피하거나 먼저 도망을 가는 등 행동 측면에서도 공존을 위한 적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곰이 두 종의 흑곰과 가지는 관계는 ‘누가 더 세냐’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사실 누가 봐도 불곰이 평균적으로 훨씬 크고 무거운데다, 잡아먹는 동물의 크기도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굳이 대단한 현장연구나 분석 없이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런 식의 판단은 우리가 살펴 볼 마지막 관계인 불곰과 북극곰(U. maritimus)의 관계를 보면 섣부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겨울엔 해빙 위를 떠돌며 살지만 얼음이 녹으면 해안가로 들어와 생활하는 탓에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북극곰들은 해빙이 없는 계절엔 그들과 마찬가지로 해안가에 먹이를 찾아 나온 불곰과 마주치곤 합니다.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 이때 둘 중 더 크고 무거우며 더 육식성인 쪽은 명백히 북극곰이지만, 현장에서의 거의 모든 기록들은 놀랍게도 먼저 피하거나 도망가는 쪽 역시 북극곰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 예로 카크토비크에서 2년간 두 곰 사이의 경쟁적인 상호작용을 연구한 논문6)에서는 먹이터에서 북극곰이 자리를 피하는 경우는 다른 북극곰에 의한 경우보다 불곰에 의한 경우가 더 많으며, 대부분의 북극곰은 불곰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자리를 피했다고 언급하면서 북극곰이 불곰과의 충돌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불곰이 북극곰보다 세고, 따라서 불곰이 곰 중 가장 센 곰이 되는 걸까요?
이 정도면 그렇다고 할만도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낸 사실은 단지 ‘북극곰이 불곰을 먼저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뿐이니까요. 가령 우리는 북극곰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정말 불곰보다 약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피하지 않고 제대로 붙었을 땐 누가 이기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알지 못하죠. 물론 이런 식의 해석이라면 이 문제는 아마 영원히 답을 낼 수 없을 텐데요, 맞습니다. 원래 우리는 다른 존재의 삶을 다 알 수도, 전부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와 진화적으로 수천만 년 동안이나 갈라져 있던 존재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달에는 답할 수 없는 것에 답을 하기보다는, 보다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의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으로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학자들이 두 곰이 싸우면 누가 이기나 보다는 두 곰이 각자 또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연구하는 데에는 전자가 그다지 과학적인 탐구주제가 아니라는 것 외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후자를 탐구하여 얻는 지식은 우리가 자연과 공존하는 데에 보탬이 된다는 점인데요, 가령 ‘곰이 서식지에서 다른 종들과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가?’를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곰을 보전하기 위해서 들인(또는 들일) 노력이 생태계에 어떤 파급효과를 낼 것인가?’라는 물음에도 답이 되어 야생동물 보전·관리에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의 곰은 어떤 식으로 서식지를 공유하는가?’ 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는 예컨대 두 종에 대한 통합적인 보전 정책과 관리 방향을 마련하는 데에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고요.
물론 꼭 저렇게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모름지기 다른 생물을 탐구할 때는 어떤 속성이나 단편보다는 그들의 삶 전체와 그 복잡성에 초점을 맞춰야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에 이러한 방향의 관심을 다시 한 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야생동물들은 우리가 그저 즐기고 말 뿐인 게임이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요.
1)F. Wang et al., Shared resources between giant panda and sympatric wild and domestic mammals, Biological Conservation 186 (2015) 319–325
2)Schaller, G. B., Qitao, T., Johnson, K. G., Xiaoming, W., Heming, S., & Jinchu, H. (1989). The Feeding Ecology of Giant Pandas and Asiatic Black Bears in the Tangjiahe Reserve, China. Carnivore Behavior, Ecology, and Evolution, 212–241. doi:10.1007/978-1-4757-4716-4_9
3)Robert Steinmetz, David L. Garshelis, Wanlop Chutipong, Naret Seuaturien, Foraging ecology and coexistence of Asiatic black bears and sun bears in a seasonal tropical forest in Southeast Asia, Journal of Mammalogy, Volume 94, Issue 1, 15 February 2013, Pages 1–18, https://doi.org/10.1644/11-MAMM-A-351.1
4)Seryodkin et al. Denning ecology of brown bears and Asiatic black bears, in the Russian Far East. Ursus 14(2):153-161 (2003)
5)Holm, G., Lindzey, F., & Moody, D. (1999). Interactions of Sympatric Black and Grizzly Bears in Northwest Wyoming. Ursus, 11, 99-108. Retrieved July 3, 2021, from http://www.jstor.org/stable/3872990
6)Susanne Miller, James Wilder, Ryan R. Wilson, Polar bear–grizzly bear interactions during the autumn open-water period in Alaska, Journal of Mammalogy, Volume 96, Issue 6, 24 November 2015, Pages 1317–1325, https://doi.org/10.1093/jmammal/gyv140
Q: 곰 중 가장 센 곰은 어떤 곰인가요?
A: 사실 야생동물끼리의 상호작용 결과를 두고 ‘누가 가장 세다’, ‘누가 누굴 이긴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세다’, ‘이겼다’의 기준이 가변적이고 모호하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애초 야생동물의 삶에서 ‘공격적인 상호작용’, 즉 ‘싸움’은 워낙 드물게 일어나는 일인지라 포착하는 것이 쉽지 않고,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번 질문처럼 서식지가 서로 달라 아예 만날 수조차 없는 종들을 포함하여 우열을 가리는 경우에는 판단의 근거로 삼을 정보 자체가 없어 문제가 더욱 복잡합니다. 이를 가정적 상황 아래 몇가지 알려진 정보들을 토대로 해결하려는 매체들도 더러 있지만, 이러한 분석들은 대개 생태적 맥락이 없는데다 판단을 위해 너무나 많은 가정과 변수를 감수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인위적 상황에 놓인 포획·사육 개체들 사이에서 일어난 ‘싸움’들을 근거로 드는 경우들도 있습니다만, 이러한 정보들은 반생태적·비과학적임은 물론 대부분 동물복지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맥락에서 얻어지는 것들인지라 갇힌 야생동물들의 복지를 추구하는 저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배치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번 질문에 대해 ‘이 곰이 저 곰보다 세다’는 식의 명료한 답변을 드릴 수 없음에 유감스럽습니다. 대신 이번 달 <궁곰하네>에서는 그 해답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 보실 수 있도록, 서식지가 겹치는 서로 다른 종의 곰들이 생태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연구결과들을 소개해 드리는 것으로 갈무리를 해보려 합니다.
오늘날 서로 다른 종의 곰들이 서식지를 공유하는 사례는 모두 5가지의 조합으로 존재하는데요, 이 중 3가지는 아시아, 2가지는 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납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서식지 중첩은 아시아 곰 중 위도 상 위아래로 가장 넓은 분포를 보이는, 우리에겐 반달가슴곰으로 익숙한 아시아흑곰(Ursus thibetanus)이 3종의 다른 곰과 각각 서식지를 공유하는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중 중첩이 가장 좁은 범위에 걸쳐 나타나는 종은 대왕판다(Ailuropoda melanoleuca)입니다. 두 종 모두 식물성 먹이가 주식인데다 주행성이기까지 해 혹여 경쟁이 있지는 않을까 싶은데요, 판다가 서식지 내의 다른 동물들과 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1)에서는 두 곰의 서식지 선택에서 서로의 존재가 기피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원리에 대해서는 두 종의 공존에 대한 다른 연구2) 를 통해 더 자세한 짐작이 가능한데요, 우선 흑곰과 달리 판다는 1~2종의 대나무만을 먹는데다 가을철엔 판다가 흑곰보다 더 고고도에서 생활하는 경향이 있고, 흑곰은 야간에 잠을 자지만 판다는 밤에도 간헐적으로나마 먹이를 먹으며, 흑곰과 달리 판다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 등의 차이가 있어 두 곰이 경쟁하지 않고도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열대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가장 작은 곰인 말레이곰(Helarctos malayanus)과 아시아흑곰의 경우도 다소 비슷한데요, 두 종의 식이생태와 공존에 대한 연구3) 를 보면 두 종 모두 과일을 가장 많이 먹고 그 다음으로는 곤충류를 먹는 식성을 가진 점은 같지만 보다 긴 혀와 발톱, 더 작은 체구를 가진 말레이곰이 비율상 곤충류를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경쟁 압력이 줄어들며, 이것이 먹이가 연중 풍부한 열대우림의 조건과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 두 곰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위 경우들은 비록 어떤 곰이 더 센지는 알려주진 못하지만 세 종이 최소한 생태적으로는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데요, 반면 불곰(U. arctos)을 포함하는 상호작용들은 그 양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불곰은 아시아 서식범위의 남쪽 일부에서 아시아흑곰과 서식지가 겹치는데요, 이 지역들 중 포식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는 극동러시아에서는 불곰이 겨울잠을 자는 아시아흑곰을 잡아먹으려 시도한 사례4) 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소수의 현장 관찰에 두 종이 크기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이나 불곰이 다른 중대형 동물을 섭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 등의 일반적인 사실들을 더해 보통은 불곰이 아시아흑곰에게 보다 상위의 경쟁자이자 포식자라고 보는 것이 중론이죠.
두 곰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시아흑곰의 북미 대응종인 아메리카흑곰(U. americanus)과 불곰의 관계를 보면 조금 더 자세한 짐작이 가능합니다. 두 종은 지금까지 소개한 어떤 조합보다도 넓은 범위에 걸친 서식지 중첩을 나타내는지라 그 만큼 많은 관찰과 연구가 이루어져 왔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불곰은 아메리카흑곰에게도 상위의 경쟁자이자 포식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흑곰과의 자료가 제한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메리카흑곰과 불곰은 물리적으로 충돌한 사례가 옐로우스톤국립공원 등지에서 여러 차례 보고되어 있으며, 불곰에게 아메리카흑곰이 잡아먹힌 사례도 한 건 이상 확인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두 종이 그렇게 많은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이유는 두 곰의 세부적인 생활사가 다르기 때문인데요, 와이오밍 북서부에서의 연구5) 에 따르면 우선 흑곰은 저고도의 삼림환경을 선호하는데 반하여 불곰은 보다 고고도의 개활지를 선호하는 등 공간적인 선호도가 다르고, 불곰이 주로 저녁부터 새벽 시간에 활동한다면 흑곰은 주로 낮 시간에 활동하는 식입니다. 더하여 흑곰이 흔적이나 냄새를 통해 불곰을 먼저 피해 다니는 경향이 있고, 직접 마주치는 경우에는 보다 가볍고 나무를 잘 타는 특징을 살려 나무 위로 몸을 피하거나 먼저 도망을 가는 등 행동 측면에서도 공존을 위한 적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곰이 두 종의 흑곰과 가지는 관계는 ‘누가 더 세냐’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사실 누가 봐도 불곰이 평균적으로 훨씬 크고 무거운데다, 잡아먹는 동물의 크기도 더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굳이 대단한 현장연구나 분석 없이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런 식의 판단은 우리가 살펴 볼 마지막 관계인 불곰과 북극곰(U. maritimus)의 관계를 보면 섣부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겨울엔 해빙 위를 떠돌며 살지만 얼음이 녹으면 해안가로 들어와 생활하는 탓에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북극곰들은 해빙이 없는 계절엔 그들과 마찬가지로 해안가에 먹이를 찾아 나온 불곰과 마주치곤 합니다.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 이때 둘 중 더 크고 무거우며 더 육식성인 쪽은 명백히 북극곰이지만, 현장에서의 거의 모든 기록들은 놀랍게도 먼저 피하거나 도망가는 쪽 역시 북극곰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 예로 카크토비크에서 2년간 두 곰 사이의 경쟁적인 상호작용을 연구한 논문6)에서는 먹이터에서 북극곰이 자리를 피하는 경우는 다른 북극곰에 의한 경우보다 불곰에 의한 경우가 더 많으며, 대부분의 북극곰은 불곰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자리를 피했다고 언급하면서 북극곰이 불곰과의 충돌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불곰이 북극곰보다 세고, 따라서 불곰이 곰 중 가장 센 곰이 되는 걸까요?
이 정도면 그렇다고 할만도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낸 사실은 단지 ‘북극곰이 불곰을 먼저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뿐이니까요. 가령 우리는 북극곰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정말 불곰보다 약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피하지 않고 제대로 붙었을 땐 누가 이기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알지 못하죠. 물론 이런 식의 해석이라면 이 문제는 아마 영원히 답을 낼 수 없을 텐데요, 맞습니다. 원래 우리는 다른 존재의 삶을 다 알 수도, 전부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와 진화적으로 수천만 년 동안이나 갈라져 있던 존재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달에는 답할 수 없는 것에 답을 하기보다는, 보다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의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으로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학자들이 두 곰이 싸우면 누가 이기나 보다는 두 곰이 각자 또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연구하는 데에는 전자가 그다지 과학적인 탐구주제가 아니라는 것 외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후자를 탐구하여 얻는 지식은 우리가 자연과 공존하는 데에 보탬이 된다는 점인데요, 가령 ‘곰이 서식지에서 다른 종들과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는가?’를 연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곰을 보전하기 위해서 들인(또는 들일) 노력이 생태계에 어떤 파급효과를 낼 것인가?’라는 물음에도 답이 되어 야생동물 보전·관리에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의 곰은 어떤 식으로 서식지를 공유하는가?’ 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는 예컨대 두 종에 대한 통합적인 보전 정책과 관리 방향을 마련하는 데에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고요.
물론 꼭 저렇게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모름지기 다른 생물을 탐구할 때는 어떤 속성이나 단편보다는 그들의 삶 전체와 그 복잡성에 초점을 맞춰야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에 이러한 방향의 관심을 다시 한 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야생동물들은 우리가 그저 즐기고 말 뿐인 게임이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요.
1)F. Wang et al., Shared resources between giant panda and sympatric wild and domestic mammals, Biological Conservation 186 (2015) 319–325
2)Schaller, G. B., Qitao, T., Johnson, K. G., Xiaoming, W., Heming, S., & Jinchu, H. (1989). The Feeding Ecology of Giant Pandas and Asiatic Black Bears in the Tangjiahe Reserve, China. Carnivore Behavior, Ecology, and Evolution, 212–241. doi:10.1007/978-1-4757-4716-4_9
3)Robert Steinmetz, David L. Garshelis, Wanlop Chutipong, Naret Seuaturien, Foraging ecology and coexistence of Asiatic black bears and sun bears in a seasonal tropical forest in Southeast Asia, Journal of Mammalogy, Volume 94, Issue 1, 15 February 2013, Pages 1–18, https://doi.org/10.1644/11-MAMM-A-351.1
4)Seryodkin et al. Denning ecology of brown bears and Asiatic black bears, in the Russian Far East. Ursus 14(2):153-161 (2003)
5)Holm, G., Lindzey, F., & Moody, D. (1999). Interactions of Sympatric Black and Grizzly Bears in Northwest Wyoming. Ursus, 11, 99-108. Retrieved July 3, 2021, from http://www.jstor.org/stable/3872990
6)Susanne Miller, James Wilder, Ryan R. Wilson, Polar bear–grizzly bear interactions during the autumn open-water period in Alaska, Journal of Mammalogy, Volume 96, Issue 6, 24 November 2015, Pages 1317–1325, https://doi.org/10.1093/jmammal/gyv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