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한창 동물원 이야기를 많이 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요즘 좀 뜸했습니다. 2022년 말,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여겼던 소위 “체험동물원”이 어느 정도 해결 국면에 접어들거라는 기대를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법과 동물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잠깐 잊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한겨레 기사 <아기 반달곰 ‘목줄 산책’…이게 무슨 교육체험인가요>를 읽고 게으름을 반성했습니다.
동료 단체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펴낸 ‘동물원 체험 프로그램 운영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체험동물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 시행령은 분명히 동물원에서 동물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못박고 있지만, 환경부는 ‘동물원 전시동물 교육・체험 프로그램 매뉴얼’이라는 것을 엉성하게 만들어 놓고 동물원들이 공공연히 동물을 체험거리로 만드는 행위가 지속되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 매뉴얼은 오히려 “체험”을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해 할 수 있는지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하는 매뉴얼에 가깝습니다. 매뉴얼에는 “체험 프로그램 지도안 예시”라며 “유료 또는 무료 먹이 체험 진행”을 주요 교육 내용이라고 소개합니다. 그 기대 효과를 “관람객에게 체험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라고 적습니다. 야생동물을 잡아다 가두어 놓고 만지고 먹을 것을 구걸하게 하는 이 “체험”들은 생명의 소중함이 아니라 생명의 하찮음을 느끼게 합니다.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는 야생동물의 존엄성을 싸구려 오락거리로 끌어내립니다.
동물과 관련해서는 “체험”이라는 말은 완전히 오염되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경험은 소중한 것이어야 하는데, 이제 한국말 “체험”은 동물 개체와 종의 고통을 전제로 하는 반생태적 폭력이 되어버렸습니다. 야생동물을 가두고 만지고 그걸로 돈을 버는 산업이 존재하는 한 한국어 “체험”은 내내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며 저지르도록 할 것입니다. 사육곰처럼 잡아먹으려고 가두는 것과 “체험동물원”에서 체험하려고 가두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야생동물에게 똑같은 경험일 뿐입니다.
동물과 자연의 이익 대신 동물원 업계의 이익을 우선하는 지금의 환경부에는, 차라리 ‘야생동물산업부’ 같은 이름이 더 어울립니다. 환경부는 기껏 만들어놓은 법의 취지를 법꾸라지처럼 피해나가는 행정을 하루빨리 그만둬야 합니다. 그리고 동물을 즐기는 사람들도 본인의 “체험”이 동물에게 무엇이 되어 동물의 피부에 닿는지 그 경계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동물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도 우리는 동물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체험동물원 #동물원 #동물복지 #전시동물 #야생동물 #환경부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한창 동물원 이야기를 많이 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요즘 좀 뜸했습니다. 2022년 말,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여겼던 소위 “체험동물원”이 어느 정도 해결 국면에 접어들거라는 기대를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법과 동물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잠깐 잊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한겨레 기사 <아기 반달곰 ‘목줄 산책’…이게 무슨 교육체험인가요>를 읽고 게으름을 반성했습니다.
동료 단체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펴낸 ‘동물원 체험 프로그램 운영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체험동물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 시행령은 분명히 동물원에서 동물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못박고 있지만, 환경부는 ‘동물원 전시동물 교육・체험 프로그램 매뉴얼’이라는 것을 엉성하게 만들어 놓고 동물원들이 공공연히 동물을 체험거리로 만드는 행위가 지속되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 매뉴얼은 오히려 “체험”을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해 할 수 있는지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하는 매뉴얼에 가깝습니다. 매뉴얼에는 “체험 프로그램 지도안 예시”라며 “유료 또는 무료 먹이 체험 진행”을 주요 교육 내용이라고 소개합니다. 그 기대 효과를 “관람객에게 체험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라고 적습니다. 야생동물을 잡아다 가두어 놓고 만지고 먹을 것을 구걸하게 하는 이 “체험”들은 생명의 소중함이 아니라 생명의 하찮음을 느끼게 합니다.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는 야생동물의 존엄성을 싸구려 오락거리로 끌어내립니다.
동물과 관련해서는 “체험”이라는 말은 완전히 오염되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경험은 소중한 것이어야 하는데, 이제 한국말 “체험”은 동물 개체와 종의 고통을 전제로 하는 반생태적 폭력이 되어버렸습니다. 야생동물을 가두고 만지고 그걸로 돈을 버는 산업이 존재하는 한 한국어 “체험”은 내내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며 저지르도록 할 것입니다. 사육곰처럼 잡아먹으려고 가두는 것과 “체험동물원”에서 체험하려고 가두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야생동물에게 똑같은 경험일 뿐입니다.
동물과 자연의 이익 대신 동물원 업계의 이익을 우선하는 지금의 환경부에는, 차라리 ‘야생동물산업부’ 같은 이름이 더 어울립니다. 환경부는 기껏 만들어놓은 법의 취지를 법꾸라지처럼 피해나가는 행정을 하루빨리 그만둬야 합니다. 그리고 동물을 즐기는 사람들도 본인의 “체험”이 동물에게 무엇이 되어 동물의 피부에 닿는지 그 경계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동물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도 우리는 동물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체험동물원 #동물원 #동물복지 #전시동물 #야생동물 #환경부